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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F. 마젤란이 비사얀제도에 도착하였고 65년부터 에스파냐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다. 필리핀 역사가 문헌사료에 기초하여 본격적으로 밝혀진 것은 16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이다. 16세기 무렵에는통일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투라는 수장과 그 가족, 자유민, 예농 즉 가내노예의 3계급으로 구성된 바랑가이를 단위로 자립생활을 하였다.

바랑가이의 규모는 보통 30∼100명 정도로구성되었는데, 연안·항만 등 교통 요지에는2000∼1만 명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71년 에스파냐는 마닐라를 필리핀 지배의 주도로 정하고 17세기 전반까지 지방행정 제도를 개편하였으며, 종교를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켰다.

주민 경제생활은 인두세·강제노동 등을 통한 수탈로 피폐해진 반면, 에스파냐인의 소비생활은중국계 상인과 기능인들의 갤리선 무역의 잡화업무에 의해 유지되었다. 에스파냐는 루손섬과비사얀제도의 평지를 정복한 뒤 산지와 남부를정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특히 남부 이슬람지역에서는 술탄국가가 성립되어 3세기에 걸쳐 몰로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 식민지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해 설탕·담배·마닐라삼 등 수출용 상품작물을 재배하는 등 경제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1834년 마닐라항의 개항과 69년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상품작물재배는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자급자족경제가 상품경제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지주와 상인 등 신흥유산계급이 형성되었는데, 이들 자제 가운데는 서구의 자유사상을 수용함으로써 민족 자치와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에스파냐에 대한 저항은 식민지배 이후 계속 있었으나 정치성과 전국성을 띠지 못하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 프로퍼갠더(선전운동)라는 개혁운동이 일어나 민족의식이 고취되기 시작하였고, 96년 8월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을 중심으로 필리핀혁명이 일어나 에스파냐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하였다.

이어 98년 E. 아기날도를 수반으로 하여 독립이 선언되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혁명군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개입한 미국이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에스파냐와 파리조약을 체결하여 필리핀은 미국에 할양, 1902년부터 미국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필리핀의 완강한 저항으로 1907년 자치권이 부여되어 입법의회가 구성되었고 16년 존스법에 의해 양원제의회가 설립되었다. 29년 세계공황이 시작되자 미국 내에서 필리핀독립 주장이 높아져 34년 타이딩스-매더피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M.L. 케손을 대통령으로 하는 필리핀 연방정부가 발족되었다. 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이듬해 일본 지배 아래 들어갔고, 43년 일본 점령군이 J. 라우렐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괴뢰인 필리핀공화국을 세우자 반일게릴라운동이 거세졌다. 45년 미국이 필리핀을 탈환하고 46년 4월 총선거가 실시되어 M. 로하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7월 독립하였다.

정치

독립 후 필리핀 정치는 미국 정치형태를 모방한 1935년 헌법을 기초로 삼권분립·보수양당제 형태를 취하였다. 또한 자유당·국민당의 2대 정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하는 미국형 민주주의가 유지되었다.

50년대 초까지 경제위기와 제 2 차세계대전 당시 항일게릴라 조직을 모태로 한 후크단의 반란으로 정치적으로 혼란하였으나 53년 R. 막사이사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C.P. 가르시아와 D. 마카파갈의 정권을 거쳐 65년 F.E.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마르코스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내세워 외자도입·공업화·농업개발·토지개혁 등을 추진하여 69년 이 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재선되었다. 이후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 3선금지규정을 폐지하는 등 장기집권을 시도하였다. 73년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고 <새로운 사회>라는 강령 아래 군부의 정치적·경제적 진출이 확대되었다. 76년 전국 13개 지방대표를 뽑아 입법자문회의를 소집, 잠정국민의회 규정을 수정하였다. 78년 4월에는 공선의원·직능대표·임명의원 등 200명으로 구성된 국회 대행기관인 잠정국민의회가 발족되었으며 이와 함께 마르코스는 대통령 겸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형식상 의원내각제 체제를 갖추고 족벌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 독재정치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83년 8월 B.S. 아키노 전상원의원 피살에 군부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으로 반정부운동이 증폭되었다. 이 밖에 국제적인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경제적 위기에까지 몰리자 마르코스는 타개책으로 대통령 조기선거를 실시하였다. 86년 앞당겨 실시된 선거에서 마르코스는 반대파 정·부통령 후보인 C. 아키노의 미망인 및 S. 라우렐 전상원의원과 경쟁하였다. 선거 결과 마르코스가 승리하였으나 야당측은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였다. 곧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국민의 저항과 함께 엔릴레 국방장관과 F. 라모스 군참모총장서리가 군부혁명을 일으켜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하였다. 87년 2월 임기 6년, 중임불가를 원칙으로 한 대통령중심제의 신헌법을 발효하였다.

그러나 8월 이래 5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 89년 12월 아키노 집권 이래 최대 규모의 군부 반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92년 대통령선거에서 라모스 국방장관이 당선되었다. 이후 필리핀 의회는 공산게릴라 및 회교도 분리주의자들의 사면과 불법화된 필리핀공산당(CPP)의 합법화 조치를 승인하였다. 97년 6월 에스트라다 부통령은 대선을 1년 앞두고 자신이 이끌던 필리핀 대중당과 민족주의국민연합(NPC), 필리핀민주투쟁 등 2개 야당을 통합해 민족주의자대중투쟁단을 창당했다. 98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2001년 1월 부패 의혹 속에 시민혁명으로 실각되자 같은해 1월 20일 G.아로요대통령이 취임하였다. 현재 입법부는 양원제를 채용하여 하원은 204명이 직선으로 선출되며 토착 소수민족대표로 최대 46명을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고 임기 3년이다. 상원은 24명으로 임기 6년, 그 절반이 3년마다 개선된다. 주요 정당으로는 라카스당·대중혁명당·자유당·신사회운동당 등이 있다. 독립 후 60년대까지 친미외교노선으로 일관하여 66년 월남파병,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하였다.

외교·군사

1946년 일본군 패퇴 후 그 해 7월 독립하였으나 미국에 종속된 명목상 독립이었다. 46년 체결된 필리핀통상법으로 그 뒤 28년 동안 미국의 경제적 지배에 놓였고, 47년 군사기지협정·군사원조협정 등이 체결되어 미국은 필리핀에 있는 23개 군사기지를 89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51년 다시 양국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독립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옛 소련과 광범위한 관계를 수립하고 동남아 여러 나라 및 일본과의 관계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73년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75년 중국·소련과 국교를 맺었다. 대미 관계는 1974년 라우렐랑크협정의 만기 실효를 계기로 그때까지의 특수한 관계에서 점차 실무적 관계로 변화하였다. 마르코스 퇴진 이후 미국·일본·서방 및 아시아 회원국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다. 91년 상원은 미국과의 새 군사기지 협정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92년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수비크만 미해군기지가 폐쇄되었다. 군대는 육·해·공군 및 통합국가경찰의 4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원제이다.

2001년 국방예산은 10억 6500만 달러로 병력은 육군 6만 6000명, 해군 2만 4000명,(해병대 7500명 포함), 공군 1만 6000명, 연안경비대 3500이다. 92년 11월 수비크만 폐쇄조치로 주둔 미군 1400명이 철수, 약 94년간 지속된미국주둔시대를 마감한 것이다. 현재 반정부 세력인 신인민군, 필리핀공산당, 모로민족해방전선 등의 도발을 받고 있다.

경제·산업

국민총생산 성장률이 1988년 6.7%, 89년 5.6%였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 4000달러(2001)로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저위에 속한다. 또 심한 소득격차로 부의 분배가 불균형 상태이다. 일반국민의 빈곤은 저생산성과 과잉노동력을 특징으로 하는 농촌에서 특히 뚜렷하다.

노동인구의 절반이 종사하는 농업에서는 식량작물(쌀·옥수수 등)이 전 수확면적 1200만ha의 65%를 차지하며, 나머지가 코코넛·사탕수수·바나나·마닐라삼(아바카)·담배 등 수출작물인데, 사탕수수를 제외하고는 소농경영이 일반적이고 생산성은 낮다. 1960년대 후반 이후의 고수량품종(高收量品種)의 도입과 농촌신용 확충으로 77년 이래 쌀은 자급상태가 되었으며, 또한 현안인 토지개혁 계획이 계엄령 이후 가속화되는 등 부분적인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부진하며, 농촌에서의 방대한 토지 농업노동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광공업에서는 독립 후 수입·환관리(煥管理), 장려적 세제(奬勵的稅制), 고율의 환(煥)레이트 등 정책적 요인이 작용하여 수입대체공업화가 진전되었는데, 1960년대 초기에는 아시아를 리드하였으나 그 뒤 정체적 경향에 있다. 국내시장이 넓지 못하다는 점, 고관세와 외자억제 등 과도한 보호주의가 국제경쟁력을 상실시켰다는 점, 원자재나 자본재의 수입급증으로 국제수지가 악화되었다는 점 등으로 국내공업의 성장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공업화 정책의 전환은 F.E. 마르코스정권 때 특히 계엄령 이후인데, 외자·외국기술의 도입, 시장개방 등을 통하여 수출공업화 촉진과 수입 대체의 고도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 결과로 공업의 성장도 향상되고 농산물가공을 중심으로 한 업종구성 가운데 근래 전자산업·의료산업이 급성장하였으며, 수출구성에도 반영되고 있다. 광공업 중 광업은 구리·금·니켈·철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수출상 중요하다. 서비스업은 취업구조상 주목되며 농촌의 과잉인구 배출에 반하여 도시에서는 공업의 흡수력이 매우 약하므로 그것이 서비스업으로 전향되는데, 그 내용은 도시에서 각종 잡업(雜業)을 형성하는 부분이 많으며, 불완전취업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도시를 통하여 고용창출의 문제는 해마다 높아져 국가 최대의 과제이다. 마르코스정권하의 산업무역정책에 의하여 수출의 신장과 구성의 변화가 뚜렷하다. 1960년대에 비하여 70년대는 수입의 평균신장률이 연 7.1%에서 3.4%로 내려갔다. 수출은 2.2%에서 7.0%로 상승하였다. 80년의 수출구성에서는 야자나무제품·설탕·동광석(銅鑛石)·목재·열대과일 등 식물·광물자원이 63%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20년 전에 비해 저하되었으며 반도체·의료 등의 공업제품이 급증하고 있다. 87년 아키노 대통령이 고용확대, 빈곤추방을 위하여 기구개혁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약 300억 달러의 대외채무에 시달리는 한편 무역시장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사회·문화

필리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유대는 가족혈연관계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가족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조직, 확대, 강화된다. 가족형태는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핵가족이 일반적인데, 친족관계는 쌍계제(雙系制)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족의 관념은 의제적(擬制的) 친족관계나 인척이 추가되어 보다 복잡하고 유연한 폭을 가지고 있다. 의제적 혈연관계로서 대표적인 것은 의례형제제도(儀禮兄弟制度)와 콤파드라스고(compadrazgo;의례적 친자관계)이다. 필리핀 기업의 대부분이 친족회사의 형태를 취하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연고자를 쓰는 족벌주의(네포티즘)가 심한 것도 이러한 가족혈연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주민

주민은 42개 인종으로 구성되어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인종적으로는 남방몽골로이드라고 하는 신(新)말레이계 인종을 중심으로, 소수민족으로서 코카소이드와 몽골로이드 양쪽 형질을 가진 구(舊)말레이계인종, 니그리토 및 중국인·유럽인이 섞여 있다.

분리독립을 부르짖고 오늘날 격렬하게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필리핀인·이슬람교도인·모로족도 인종적으로는 타갈로그, 세부아노와 마찬가지로 신말레이계이다.

언어

필리핀제어(諸語)는 언어학적으로는 모두 오스트로네시아(말라요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며 말레이어·자바어 등과도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필리핀인은 필리핀제어를 서로가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편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최소한 반년이 걸린다. 그 가운데 주요한 것은 세부아노·타갈로그(23.8%)·일로카노(11.1%) 등 8종류이다.

1939년 타갈로그어를 국어의 기초로 삼는다는 것이 결정되었으나, 영어가 그대로 공용어·수업영어로서 남아 국어의 보급은 크게 지연되었는데 59년 국어는 필리피노라고 명명하였다. 70년의 보급률은 55%에 불과하였으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정신이 고양되어 최근에는 보급이 상당히 진전되었다.

종교

필리핀의 종교별 인구비는 그리스도교계의 종교, 이슬람, 기타로 나뉜다. 외래의 세계종교가 도래하기 이전의 필리핀 주민의 종교는 정령신앙(精靈信仰;애니미즘)이었다. 오늘날에도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은 정령신앙을 가지고 있다. 세계 종교 가운데 최초로 전래된 것은 이슬람교로서 14세기 후반부터 남부를 중심으로 퍼졌고, 현재 4.3%의 교도가 술루제도, 민다나오섬의 서·남부 평야 및 해안지대, 팔라완섬 남부의 해안지대에 퍼져 있다. 가톨릭은 16세기 후반에 에스파냐의 식민지 지배와 함께 들어왔고, 전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가 되었다.

필리핀 독립교회는 필리핀혁명기에 가톨릭교회의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생겨난 민족교회로서 1902년에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신도는 북일로코스주를 중심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다. 프로테스탄트는 3%로 미국의 식민지 지배와 함께 들어왔다. 미국문화는 필리핀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체제기에 들어서면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뒤 여러 가지 신흥 종교가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 최대의 것이 이글레시아니크리스토이다. 이 밖에 주목받는 신흥종교는 일반적으로 리살리스타라 총칭되는 제종교조직(諸宗敎組織)이다. 리살리스타의 특징은 민족영웅 리살(Rizal)이 구세주로서 사람을 구원하러 온다는 신앙이다.

대부분의 필리핀인의 사회생활은 가톨릭교회의 교회력(敎會曆)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연중행사는 크리스마스와 사순절(四旬節)의 여러 행사, 각 마을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을 축하하는 피에스타,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위령(尉靈)의 날이다. 이 연중행사에는 가족이나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간의 유대를 돈독히 한다. 현재 필리핀에서 신봉되고 있는 가톨릭은 옛날의 정령신앙시대의 의례나 신앙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 정통적인 가톨릭에서는 많이 일탈하고 있다.

교육

교육의 가치가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교육제도도 진척되고 있다. 현재의 학제는 초등교육 6년(초등과정 4년과 중간과정 2년), 중학교육 4년, 대학 4년으로 되어 있으며, 초등교육 6년간이 의무교육이다.

초등·중등교육의 학생등록률은 90%에 가깝다. 학교교육에서 최대의 문제는 언어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지방어로 교육받고, 동시에 국어인 필리피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3학년 이상이 되면 영어와 필리피노가 교육용어가 되며, 상급으로 올라감에 따라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중등교육기관 및 대학에서는 거의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을 대중화하고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교육용어 문제가 최대의 과제이다.

한국과의 관계

1949년 3월 한국과 단독으로 외교관계를 수립, 6·25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54년 1월 양국 공사관이 설치된 뒤 58년 2월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한국과는 61년 무역협정·우편협정, 69년 항공운수협정, 70년 문화협정과 외교관 및 관용사증면제협정, 83년 경제기술협정, 86년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였다. 양국간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외교가 빈번하고 민간 경제교류도 활발한 편으로 현대건설·한일개발 등 7개 건설업체와 정부투자기관을 비롯, 10여개 기업체가 진출해 있다.

2001년 대한수출 18억 1900만 달러, 대한수입 25억 3500만 달러이며 수출품목은 동광·코프라·코코넛오일, 수입품목은 전자·철강·경제유 등이다. 교민 1만 137명, 체류자 6000명이다. 북한과는 2000년 7월에 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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